우크라이나의 국가 건립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 나라가 수천 년에 걸쳐 다양한 문화와 제국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 복잡한 배경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 평원의 중심에 위치하며, 그 지정학적 중요성 덕에 여러 세력의 각축장이 되어왔습니다. 아래는 우크라이나 국가 역사의 주요 단계를 간략히 정리한 내용입니다.

1. 초기 역사: 키이우 루스 (9세기~13세기)
- 기원: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기원은 9세기에 형성된 **키이우 루스(Kyivan Rus')**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는 동슬라브족이 세운 중세 국가로, 현재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의 뿌리로 여겨집니다.
- 건국: 882년, 바이킹 출신의 류리크 왕조의 올레흐(Oleh)가 키이우(현재 키이우, 우크라이나 수도)를 수도로 삼아 통일된 국가를 세웠습니다. 키이우 루스는 동유럽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 기독교 수용: 988년, 볼로디미르 대공(Володимир Великий)이 비잔티움 제국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았고, 이는 동슬라브 문화와 정체성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었습니다.
- 쇠퇴: 13세기 몽골 제국(금장汗國)의 침략으로 키이우 루스는 붕괴했고, 이후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2. 외세 지배 시기 (13세기~17세기)
- 몽골과 리투아니아-폴란드 지배: 몽골 침략 이후, 우크라이나 영토는 리투아니아 대공국(14세기)과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1569년 루블린 연합) 아래로 넘어갔습니다. 이 시기 우크라이나는 농업 중심지로 발전했으나, 귀족 지배와 종교적 억압(정교회 vs 가톨릭)으로 사회적 긴장이 커졌습니다.
- 코자크의 등장: 15~16세기, 드네프르 강 유역에서 **코자크(Cossacks)**라는 자유로운 전사 집단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은 농민과 도망 노예로 구성되어 폴란드 지배에 저항하며 우크라이나인의 민족 의식을 키웠습니다.
- 자포리자 시치: 코자크는 자포리자 시치(Zaporozhian Sich)라는 자치 공동체를 만들어 독립적인 군사력을 유지했습니다.
3. 코자크 국가와 러시아의 영향 (17세기~18세기)
- 흐멜니츠키 봉기 (1648~1657): 코자크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Богдан Хмельницький)가 폴란드에 맞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잠시 독립적인 코자크 국가(헤트만국, Hetmanate)를 형성했으나, 외부 위협(폴란드, 오스만 제국)으로 러시아 차르국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 페레야슬라프 조약 (1654): 흐멜니츠키는 러시아와 협정을 맺어 보호를 받는 대가로 자치권을 유지하려 했으나, 이는 점차 러시아의 간접 지배로 이어졌습니다.
- 러시아와 폴란드 분할: 18세기 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쇠퇴하며 우크라이나 영토는 러시아 제국(동부)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서부, 갈리치아 지역)으로 나뉘어졌습니다.
4. 제국 지배와 민족주의 부흥 (19세기~20세기 초)
- 러시아화와 억압: 19세기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어 사용 금지(1863년 발루예프 칙령, 1876년 엠스 칙령)와 같은 정책으로 우크라이나 문화를 억압했습니다. 반면, 오스트리아 지배하의 서부 우크라이나(갈리치아)에서는 민족주의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성장했습니다.
- 민족 부흥: 19세기 말, 타라스 셰우첸코(Тарас Шевченко)와 같은 시인, 역사학자 미하일로 흐루셰우스키(Михайло Грушевський)가 우크라이나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5. 독립 시도와 소련 편입 (20세기)
- 1917~1921년 독립 투쟁: 러시아 제국 붕괴 후, 1917년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UNR)이 수립되었으나, 볼셰비키와의 내전과 외세 간섭(폴란드, 독일)으로 실패했습니다. 서부 우크라이나는 잠시 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WUNR)을 세웠으나 역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 소련의 일부로: 1922년,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창립 구성국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 홀로도모르 (1932~1933): 스탈린의 농업 집단화 정책으로 인공 기근이 발생해 수백만 명이 사망하며, 이는 우크라이나 민족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의 점령(1941~1944)과 소련의 재점령을 겪으며 우크라이나는 큰 파괴를 겪었으나, 전후 소련의 공업 중심지로 재건되었습니다.

6. 현대 우크라이나: 독립과 갈등 (1991년~현재)
- 독립: 1991년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는 국민투표(90% 이상 찬성)를 통해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 국가로 출범했습니다. 레오니드 크라우추크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 지정학적 긴장: 독립 후 우크라이나는 서구(유럽연합, NATO)와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했으나, 러시아는 크림반도와 동부 지역을 영향권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 2014년 위기: 친러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축출(유로마이단 혁명) 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돈바스 지역에서 분리주의를 지원하며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 2022년 러시아 침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며 현재까지 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5년 3월 기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 약 18%를 점령 중이나, 우크라이나는 강한 저항과 국제적 지원으로 독립을 지키고 있습니다.
요약 및 특징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키이우 루스라는 강력한 중세 국가에서 시작해, 코자크의 자유 정신, 외세 지배, 그리고 민족주의 부흥을 거쳐 현대 독립국으로 발전한 과정입니다.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위치한 탓에 끊임없는 외부 간섭을 받았지만, 독립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현재 러시아와의 전쟁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우크라이나인의 생존과 자주권을 위한 싸움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