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618~907년), 중동 상인(주로 아랍, 페르시아 상인), 그리고 중세 초기 유럽 상인(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해상 및 육상 무역에서 지도를 사용했지만, 현대적 의미의 정확한 지리 지도보다는 실용적이고 상징적인 지도, 항해 안내서, 또는 구전 지식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각 지역의 상인들이 사용한 지도나 항해 도구는 그들의 문화, 기술, 무역 네트워크의 특성에 따라 달랐습니다. 아래에서 당나라 상인, 중동 상인, 유럽 상인(스페인·포르투갈 중심)의 지도 사용 여부와 특징을 비교하며 설명하겠습니다.
1. 당나라 상인 (중국, 618~907년)
당나라 상인은 실\[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동아프리카까지 무역을 했지만, 지도 사용은 제한적이었고 주로 경험적 지식에 의존했습니다.
- 지도 사용 여부:
- 제한적 지도 사용: 당나라에서는 **《해 내 화 이 도》(Hainei Huayi Tu)**와 같은 지도가 있었지만, 이는 주로 행정·군사·상징적 목적으로 제작되었고, 상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한 증거는 부족합니다. 이 지도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하며, 실크로드(장안→사마르칸트→바그다드)와 해상 무역로(광저우→말라카→인도)를 간략히 표시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실용적 자료: 상인들은 지도보다는 무역로 안내서나 지리 기록(예: 《대당서역기》)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가단(賈耽)의 지리 저술은 무역 경로와 거리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 구전 지식: 당나라 상인은 숙련된 선원, 상인, 역참 관리자의 경험과 구전 지식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특히 해상 무역에서는 항해술(별자리, 바람, 해류 관찰)과 항구 간 경로 정보가 중요했습니다.
- 무역 맥락:
- 육상: 실크로드에서는 역참(驛站)과 대상로(caravanserai)가 경로 안내 역할을 했으며, 상인들은 주요 도시(장안, 루양, 사마르칸트) 간 표지판과 지역 가이드를 따랐습니다.
- 해상: 광저우, 양저우 항구에서 출발해 말라카, 인도, 페르시아만까지 항해했으며, 항해는 주로 연안 항법(coastal navigation)을 사용해 육지 표식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 지도 한계: 당나라 지도는 축척이 없고 상징적이었으며, 아메리카 대륙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이전 답변 참조).
- 결론: 당나라 상인은 현대적 지도보다는 무역로 기록, 구전 지식, 항해술에 의존했으며, 지도가 사용되었다면 상징적이고 간략한 형태였을 것입니다.
2. 중동 상인 (아랍·페르시아 상인, 7~10세기)
중동 상인은 당나라와 동시대에 실크로드와 인도양 무역 네트워크를 통해 활발히 활동했으며, 지리학 및 항해술이 비교적 발달했습니다.
- 지도 사용 여부:
- 지리학 전통: 아랍·페르시아 상인은 고대 그리스(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와 이슬람 지리학자(알-마수디, 이븐 후르다드비흐)의 영향을 받아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알-이스타흐리(10세기)**의 《도로와 왕국의 책》(Kitab al-Masalik wa al-Mamalik)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포함한 세계 지도를 포함했으나, 상징적이고 비축척적이었습니다.
- 항해 지도: 해상 무역에서는 항해 안내서(예: 《인도 항해의 책》, 9~10세기 아흐마드 이븐 마지드)와 **항로도(portolan charts의 초기 형태)**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은 항구 간 거리, 방향, 바람 패턴을 기록했습니다.
- 별자리와 나침반: 아랍 상인은 아스트롤라베(천체 관측기)와 초기 나침반(자석 바늘)을 사용해 항해 방향을 파악했습니다. 특히 인도양에서 몬순 바람을 활용한 항해술이 발달했습니다.
- 무역 맥락:
- 육상: 실크로드를 따라 바그다드, 사마르칸트, 페르시아를 연결하며 대상로와 지역 가이드에 의존했습니다.
- 해상: 인도양을 통해 동아프리카(잔지바르),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광저우)까지 항해했으며, 연안 항법과 별자리 관찰을 사용했습니다.
- 포함된 지역: 중동 지도는 아시아(중국, 인도), 유럽(비잔티움), 아프리카(동아프리카, 북아프리카)를 포함했으나, 아메리카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 결론: 중동 상인은 비교적 정교한 지리학 지식을 바탕으로 상징적 지도와 항해 안내서를 사용했으며, 아스트롤라베와 나침반으로 항해술을 보완했습니다. 하지만 지도는 여전히 실용적·상징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3. 유럽 상인 (스페인·포르투갈, 중세 초기 ~ 10세기)
당나라와 동시대(7~10세기)의 유럽은 중세 초기의 암흑기로, 지도 제작과 항해술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했습니다. 스페인·포르투갈 상인은 15세기 이후(대항해 시대)에서야 본격적으로 지도를 사용했으므로, 이 시기에는 제한적 활동만 고려됩니다.
- 지도 사용 여부:
- T-O 지도: 중세 유럽의 대표적 지도는 T-O 지도로, 세계를 상징적으로 세 대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으로 나누고 예루살렘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이는 신학적·종교적 목적이 강했으며, 무역 상인에게 실용적이지 않았습니다.
- 항해 안내서: 유럽 상인은 페리플루스(periplus) 스타일의 항해 기록(예: 《에리트레아 해의 페리플루스》의 영향을 받은 기록)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항구 간 경로와 상품 정보를 기록한 안내서였습니다.
- 구전과 경험: 바이킹, 이탈리아(베네치아, 제노바) 상인처럼 유럽 상인은 구전 지식과 선원의 경험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특히 바이킹은 별자리와 연안 항법을 사용해 북유럽과 비잔티움 간 무역을 했습니다.
- 항해 도구 부족: 나침반은 12세기 이후 유럽에 전파되었고, 아스트롤라베는 이슬람 세계를 통해 늦게 도입되었습니다. 당대에는 바람, 해류, 육지 표식에 의존했습니다.
- 무역 맥락:
- 육상: 유럽 내 무역은 로마 도로망과 지역 시장(프랑크 왕국, 이탈리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지도보다는 경로 안내와 가이드에 의존했습니다.
- 해상: 지중해 무역(비잔티움, 북아프리카)과 북해 무역(바이킹)이 주를 이루었으며, 연안 항법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 포함된 지역: 유럽 지도는 아시아(중국, 인도), 유럽, 아프리카(북아프리카)를 상징적으로 포함했으나, 아메리카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 스페인·포르투갈의 한계: 10세기까지 스페인·포르투갈은 이슬람 지배(알-안달루스) 하에 있었고, 독립적 무역 활동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들은 15세기(엔히크 왕자, 대항해 시대) 이후 포르톨란 차트(portolan charts)와 프톨레마이오스 지도를 사용하며 세계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 결론: 중세 초기 유럽 상인은 T-O 지도와 같은 상징적 지도를 알았으나, 무역에서는 구전 지식, 연안 항법, 간단한 항해 기록에 의존했습니다. 스페인·포르투갈의 본격적 지도 사용은 15세기 이후입니다.
4. 비교와 공통점
- 공통점:
- 상징적 지도: 당나라, 중동, 유럽 모두 현대적 지도(축척, 좌표)와 달리 상징적·비축척적 지도를 사용했습니다. 무역보다는 행정·종교·군사 목적이 강했습니다.
- 구전과 경험 의존: 모든 지역의 상인은 숙련된 선원, 지역 가이드, 구전 지식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 아메리카 미포함: 당나라, 중동, 유럽 모두 10세기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알지 못했으므로 지도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 항해술: 연안 항법, 별자리, 바람 패턴 관찰은 공통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차이점:
- 기술 수준: 중동 상인은 아스트롤라베와 나침반을 사용하며 항해술이 가장 발달했으며, 당나라는 실용적 지리 기록이 강했으며, 유럽은 지도와 항해술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했습니다.
- 무역 네트워크: 당나라는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중동은 인도양과 실크로드를, 유럽은 지중해와 북해를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 지도 접근성: 당나라와 중동은 중앙집권적 국가의 지원으로 지도가 제작되었으나, 유럽은 분산된 봉건 체제로 지도 제작이 제한적이었습니다.
5. 결론
- 당나라 상인: 상징적 지도(예: 《해 내 화 이 도》)와 무역로 기록, 구전 지식, 항해술(별자리, 연안 항법)에 의존. 아메리카 미포함.
- 중동 상인: 알-이스타흐리 지도, 항해 안내서, 아스트롤라베, 나침반 사용.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포함, 아메리카 미포함.
- 유럽 상인(스페인·포르투갈): T-O 지도, 항해 기록, 구전 지식, 연안 항법에 의존. 10세기까지 지도 사용 제한적, 아메리카 미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