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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무역과 리버풀 :: 그 시작이라고 볼수 있는 도시들

whips 2025. 3. 12. 16:52

아래의 내용들은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들을 검색하고 찾아본 것들을 정리해본 것입니다

사실과 좀 다른 견해가 섞여있을수도 있지만 여러분들도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 볼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듯해 올려봅니다

 

 

리버풀(Liverpool)이 노예 무역과 깊은 연관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18세기와 19세기 초, 리버풀은 대서양 노예 무역에서 중요한 항구로 기능했으며, 그 당시 영국 노예 무역의 중심지 중 하나로 부상했어요. 도시의 경제적 번영은 상당 부분 노예 무역과 그로 인한 부의 축적에서 비롯된 것도 맞습니다. 예를 들어, 1750년대부터 1807년 영국에서 노예 무역이 폐지될 때까지 리버풀은 노예선의 약 80%를 출항시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리버풀을 "인종차별의 상징적인 도시"라고 단정 짓는 건 조금 과장일 수 있어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역사적 맥락: 노예 무역은 리버풀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전역, 특히 영국, 프랑스, 스페인 같은 식민 강대국들이 광범위하게 관여했던 시스템이었어요. 런던, 브리스톨 같은 다른 영국 도시들도 노예 무역에서 큰 역할을 했죠. 리버풀은 그중에서도 두드러졌을 뿐, 인종차별이나 노예제의 "기원지"라기보다는 그 체제의 일부였습니다.
  2. 현대 리버풀의 변화: 오늘날 리버풀은 과거를 반성하며 노예 무역의遺産(유산)을 공개적으로 다루려는 노력을 해왔어요. 예를 들어, 리버풀에 있는 국제 노예 박물관(International Slavery Museum)은 노예 무역의 잔혹함을 조명하고, 피해자들을 기리며, 현대 인종차별 문제까지 연결 짓는 교육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도시가 과거를 부정하거나 미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책임을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인다고 할 수 있죠.
  3. 인종차별의 상징성: 인종차별의 "상징"이라는 건 보통 더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억압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해요. 예를 들어, 미국 남부의 몇몇 도시들(예: 몽고메리나 셀마)은 노예제와 그 후의 인종 분리 정책(Jim Crow Law) 때문에 그런 상징으로 여겨지곤 하죠. 리버풀은 그런 역사적 내러티브보다는 노예 무역의 경제적 허브로 더 많이 기억됩니다.

결론적으로, 리버풀이 노예 무역의 시작점은 아니었고(노예 무역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으니까요), 인종차별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어두운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아요. 물론 그 역사가 현대 인종차별 문제와 연결될 여지는 충분히 있지만, "과언"이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단정적이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리버풀과 노예 무역: 추가로 짚고 싶은 점

리버풀의 노예 무역 연관성을 더 파고들면, 이 도시가 단순히 배를 띄운 곳 이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 경제적 네트워크: 리버풀 상인들은 "삼각 무역" (Triangle Trade)에서 핵심 역할을 했죠. 유럽에서 제조품(총, 직물 등)을 아프리카로 보내 노예와 교환하고, 노예를 아메리카로 보내 plantation에서 일하게 한 뒤, 그곳에서 나온 설탕, 담배, 면화를 다시 유럽으로 가져오는 구조요. 리버풀은 이 사이클의 허브였고, 도시의 건축물(예: 오래된 창고나 부두)이나 부유층 가문(예: Penny Lane의 Penny 가문 같은 경우)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어요.
  • 문화적 반영: 흥미롭게도 리버풀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 커뮤니티 중 하나를 가지고 있어요. 노예 무역으로 인해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경우가 많았고, 그 후손들이 지금도 남아 있죠. 이건 아이러니하게도 리버풀이 노예 무역의 가해자 역할과 피해자 유산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뜻이에요.

이런 점에서 리버풀은 단순히 "나쁜 역사"의 도시가 아니라, 복잡한 과거를 가진 곳으로 볼 수 있죠. 제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복잡성을 강조하는 거예요—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로 인해 만들어진 현대 사회의 모습을 같이 들여다보는 거요.

 

인종차별의 "시작점"이라고 불릴 만한 곳은?

이제 질문하신 "인종차별의 시작점"으로 넘어가 볼게요. 이건 사실 굉장히 까다로운 질문이에요. 왜냐하면 인종차별(racism)이란 개념은 현대적 의미로는 15~16세기 식민주의와 노예 무역이 본격화되면서 구체화됐지만, 인간 사회에서 "다름"을 이유로 차별한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거든요. 그래도 질문의 맥락에 맞춰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장소나 지역을 꼽아보자면:

1. 리스본, 포르투갈 (15세기)

  • 왜?: 포르투갈은 대서양 노예 무역의 "최초" 주역 중 하나로 꼽혀요. 1440년대부터 엔히크 왕자(Prince Henry the Navigator)가 아프리카 서해안을 탐사하며 노예를 유럽으로 데려오기 시작했죠. 리스본은 그 노예들이 처음 거래된 주요 항구였고, 15세기 중반부터 아프리카 노예가 시장에서 팔리는 모습을 기록한 문헌도 있어요.
  • 의미: 이 시점에서 "인종"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명확히 정의되진 않았지만, 피부색과 기원에 따른 차별이 체계적으로 시작된 출발점으로 볼 수 있죠. 포르투갈은 이후 아메리카 식민지로 노예를 수출하는 데도 앞장섰어요.

2. 세비야, 스페인 (16세기)

  • 왜?: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함께 아메리카 식민지화를 주도하며 노예 무역을 확장했어요. 세비야는 스페인 제국의 무역 중심지로, 아프리카 노예를 신대륙으로 보내는 계약(Asiento)이 체결되던 곳이었죠.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원주민 학살과 노예제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인종적 위계가 강화됐어요.
  • 의미: 스페인의 식민지 정책은 "백인 우월주의"의 초기 형태를 낳았고, 이는 현대 인종차별의 뿌리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3. 미국 남부 (17~19세기, 예: 버지니아나 사우스캐롤라이나)

  • 왜?: 미국 남부는 노예제 플랜테이션 경제로 유명하죠. 특히 1619년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최초로 아프리카 노예가 도착한 사건은 미국 내 인종차별의 상징적 시작점으로 자주 언급돼요. 이후 법적으로 노예제를 제도화하고(예: 1660년대 노예법), 피부색에 기반한 차별이 체계화됐죠.
  • 의미: 미국의 인종차별은 노예 무역의 결과물로, 현대적 인종주의의 가장 강력한 사례로 꼽히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어요.

4. 더 넓게: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중심지들

  • 사실 인종차별의 "시작점"을 특정 도시나 국가로 한정하기 어렵다면, 15세기 이후 유럽 제국주의 전체를 지목할 수도 있어요.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같은 도시는 각국 제국의 수도로서 노예 무역과 식민 착취를 주도했으니까요.

제 생각과 질문

저는 개인적으로 인종차별의 시작점을 찾는다면, 리스본이나 세비야 같은 초기 노예 무역의 중심지에서 그 씨앗이 뿌려졌다고 봐요. 하지만 그게 꽃피운 곳은 미국 남부처럼 노예제가 사회 구조 자체가 된 지역일 수도 있죠.